수취 체제
조세
과전법(1결 30두)에서 공법(전분, 연분 - 1결 4두~20두)으로 변화하며, 임진왜란 이후 인조 때 영정법(1결 4두~6두)으로 바뀐다.

공납
특산물을 바쳤으나 방납을 폐단하고 임진왜란 이후 광해군 때 이원익이 제시한 대동법을 실시하며, 김육이 경기에서 전국으로 확장한다. 대동법은 1결 12두 또는 동전과 포를 선혜청에 납부하게 하였다. 선혜청에서는 공인이 나라에 필요한 물품들을 조달하였는데, 이로 인해 상품 화폐 경제가 시작되었다.
[선을 넘는 녀석들 - 리턴즈] 백성을 사랑한 숙종의 대동법! 설쌤의 간단 정리 TIME~ 20200412 - YouTube
역
군역의 형태로 수취하였지만 대립과 방군수포(1년 2필으로 면제해주는 것)로 인해 요역의 형태를 갖추게 되었다. 임진왜란 이후 영조가 1년 1필을 수취하는 균역법을 실시하였으며, 부족한 세금은 어·염·선박세, 선무군관포, 결작(1결 2두)으로 충족하였다.


*수취 체제는 전세화, 금납화가 이루어진 것을 알 수 있다.
농업
밭
2년 3작에서 1592년 이후 상품 작물인 담배, 인삼, 면화 등의 재배가 주로 이루어졌다.
논
직파법이 주로 사용되었으나 남부 일부에서 이앙법을 사용하기 시작하였다. 1592년 이후 이앙법이 전국에서 주로 사용되었으며, 이모작과 광작을 하였다. 이로 인해 생산력이 증가하고 노동력이 줄어들게 되었다.

지대
2분의 1을 수취하는 신분 위주의 타조법에서 1592년 이후 타조법과 계약 위주의 도조법이 사용되었다.
농서
1592년 이전: <농사직설>, <금양잡록>
1592년 이후: <농가집성>, <색경>
상업
1592년 이전에는 중농억상으로 농업 위주였다.
관허 상인
시전 상인이 육의전과 종로에서 활동하였으나 1592년 이후 정조가 금난전권을 없애고 신해통공을 펼쳤다.

지방 장시인 보부상이 활동하였으며, 보부상을 관리하고 보호하는 혜상공국이 설치되고 보부상들이 중심으로 활동한 황국 협회가 만들어졌다. 1592년 이후 보부상이 전국적 유통망의 역할을 하게 된다.
조선 후기에는 대동법으로 인해 공인이 등장한다.
사상
조선 후기 거상들이 송상에서 활동하며 송방을 세웠다. 공인과 거상을 두고 도고(허생)라 불렀다.
중개 역할을 하던 객주와 숙박을 제공하는 여각이 있었다.
난전 상인들이 늘어났으며, 이들은 영세 상인이었다.
사무역은 후시무역, 공무역은 개시무역이라고 불렀다. 지방의 장시는 송파, 원산, 강경장 등에서 열렸다.

화폐
조선 전기에는 저화라는 지폐가 있었으나 사실상 사용되지 않았고, 조선 후기 숙종 때 보급된 상평통보가 사용되었으나 전황으로 인해 물가가 떨어지고 디플레이션이 발생했다.
널리 사용된 조선 시대의 화폐 상평통보 (역사만화 64화) [공부왕찐천재]
수공업, 광업
수공업
조선 전기 수공업은 관영으로 이루어졌으며 공장안에 기록되었다. 부역제가 해이해지고 1592년 이후 민영화되며 선대제 방식이 생겨났다. 이후 독립 수공업으로 변화하였다.
광업
전기에는 관영이었으나 부역제가 해이해지고 1592년 이후 민영의 형태로 변화하며 은광이 유행한다. 또한 설점수세로 인해 잠채가 발생하였다. CEO의 역할을 하던 덕대는 거상에게 자본을 받았고 노동자를 고용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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