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후기에는 신분제 동요로 인해 양반 수가 증가하고 상민과 노비 수는 감소하였다.
양 난으로 인해 토지 문서인 양안과 사람을 기록한 호적이 사라지게 되고 국가 재정이 감소하게 된다. 이에 따라 납속책으로 공명첩을 주어 양반 신분을 살 수 있도록 한다. 양반이 되면 군역을 하지 않는다는 혜택이 있었다.

양반은 권반, 향반, 잔반(몰락 양반)으로 나뉜다. 향반은 구향으로 불리며, 상민이었다가 양반이 된 신향과 대립하는 향전이 일어나는데, 이에 따라 보학(족보)을 만들고 사당의 수를 늘리며, 동성촌을 이루고 가부장적인 성격을 띠게 되며 이로 인해 여성의 지위가 낮아진다.
중인은 서얼과 기술직 증인으로 나뉘었다. 서얼은 신분 상승 상소를 올리며, 박제가와 유득공 등의 서얼들은 규장각 검서관에 등용되기도 하였다. 기술직 중인은 소청하였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들은 시사 조직을 만들어 위항(여항) 문학을 즐겼다.

상민은 부농과 임노동자로 나뉘었다. 부농은 족보 매입과 위조를 하거나, 납속책을 통해 양반이 되었다. 이들은 신향으로 불리었으며, 지방관과 결탁하여 향안을 없애기도 하였다.
천민은 노비가 대다수였으나 노비종모법과 순조 때의 공노비 해방으로 인해 양인화되거나 도망을 갔다.

민중 의식 성장
이렇게 상민과 천민이 양인화되면서 민중 의식이 성장하게 된다.
예언 사상 유행
<정감록>과 도참, 미륵 신앙이 유행하였다.
평등 의식 유행
서학을 통해 천주교가 유행하였으며, 천주교는 제사를 지내지 않아 사교로 취급받았다. 정조 때 윤지충이 제사를 거부하자 신해박해가 일어났다. 순조 때는 신유박해로 인해 이승훈이 사형당하고 정약용이 유배당했다. 이후 황사영 백서 사건이 일어나기도 하였다.
[토크콘서트 화통] 조선시대 때 일어난 황사영 백서사건이란? I 다산, 새로운 세상을 꿈꾸다 I 교수 전호근
최제우가 창시하고 이후 최시형이 전파한 동학은 인내천과 시천주를 교리로 두었다. <동경대전>, <용담유사> 등의 도서가 있다.

19세기 농민 봉기
백성의 의식이 성장함에 따라 농민 봉기가 일어나게 되었다.
홍경래의 난
순조 때 홍경래, 우군칙과 광산 노동자들, 농민들이 정주성에서 일으킨 봉기이다. 세도 정치와 서북 지역민 차별이 원인이었다.

임술 농민 봉기
철종 때 진주에서 일어난 농민 봉기로, 백낙신과 유계춘이 대립하였다. 세도 정치와 삼정의 문란이 원인이었다. 대응안으로 박규슈를 안핵사로서 파견하여 삼정이정청을 설치하였다. 또한 암행어사를 파견하였다.

조선 백성들은 참지 않지! 그들의 분노에 철종이 내린 결단은? #벌거벗은한국사 EP.33 | tvN STORY 221207 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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