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중종 때 3포 왜란으로 인해 세워진 비변사는 임시 기구였지만, 명종 때 을묘왜변이 일어나며 상설 기구가 되었다. 임진왜란 이후 권력이 커지며 의정부와 6조의 권력은 떨어진다. 후에 세도 정치 시기 권력이 더욱 커지며 이에 따라 왕권은 하락하였다. 후에 흥선 대원군이 폐지한다.
🎵비변사의 시작 (feat. 공기 반 소리 반) | K-History Pop
중앙군은 5위 체제에서 임진왜란 이후 5군영 체제로 변화하며, 포수와 사수, 살수의 삼수병으로 이루어진 훈련도감을 설치한다. 삼수병은 삼수미를 받았으며 모병에서 직업 군인, 즉 급료 상비군으로 변화한다. 또한 인조가 호란 때 수어청과 총융청, 어영청을 설치하였으며, 숙종 때 금위영을 설치한다.
https://youtu.be/n-_29ZcKXiw?si=MMT0OUC51W_vuoK-
지방군은 영진군 체제에서 임진왜란 이후 양반에서 노비까지로 이루어진 속오군 형태로 변화하며, 이는 예비군의 성격을 지닌다.
수비 체제는 진관 체제에서 임진왜란 때 제승방략 체제로 변화했지만, 이후 속오군을 통한 진관 체제로 다시 변화한다.
왜란 이후 회답 겸 쇄환사를 파견하여 사명대사 유정이 일본 포로를 데려오게 된다. 1609년 광해군이 일본과 기유약조를 맺는다.
통신사는 중국에서 조선, 조선에서 일본으로 선진 문물을 전달하는 역할을 하였다. 또한 막부 권위를 인정하는 의미를 지녔다.

개항 이후에는 수신사가 파견되는데, 서양에서 일본, 일본에서 조선으로 서구 문물을 수용하는 성격으로 통신사와는 다르다.
숙종 때 안용복이 울릉도와 독도를 우리 영토로 인정하는 증서를 받는다.

대한 제국 1900년에 독도는 대한 제국 칙령 제 41호로 우리나라 소유로 인정을 받지만 러일 전쟁으로 일본 시마네현에 강제 편입된다.

그 외 나라
광해군은 강홍립 투항 등 중립 외교를 실시한다.

서인이 인조반정을 일으켜 즉위한 인조는 친명배금 정책을 펼친다. 정묘호란 때 활약한 장군은 용골에서 전투한 정봉수와, 이립이 있다. 병자호란 때는 최명길과 김상헌이 있으며, 백마산성에서 임경업, 광교사넹서 김준룡, 강화도에서 김상용이 순절하였다.


효종 때 송시열이 북벌론을 제시하며 후에는 윤휴도 북벌론을 제시한다. 나선(러시아) 정벌을 위해 조총 부대를 파견하기도 하였다.


숙종 때 백두산정계비를 세우며, 서위압록과 동위토문이 적혀져 있으며 이를 통해 간도가 우리 땅임을 알 수 있다.

정조 때 박지원과 박제가가 북학론을 제시한다.

대한 제국 때 간도 관리사로 이범윤이 간도에 파견되었으나, 1909년 청과 일이 간도 협약을 맺는다. 1905년 을사늑약으로 인해 우리나라는 외교권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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