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족의 변화
고려 초기 세력이었던 호족은 중기에 들어서 문벌귀족이 되었다.
호족은 초기에는 선종을 믿었으나, 중기에 들어서 교종을 믿었다.
또한 초기에는 고구려 계승 의식을 가졌으나, 중기에 들어서 신라 계승 의식을 가지게 되는 등 변화를 맞는다.
*호족 → 문벌 | 선종 → 교종 | 고구려 → 신라
호족의 특혜
호족은 여러 특혜를 받는 기반을 지니고 있었다.
정치에는 음서 제도가 있어 5품 이상은 관리직에 바로 편입할 수 있었다.
경제 측면에서는 5품 이상의 관리가 받는 토지인 공음전을 통해 부와 권력을 모두 세습할 수 있었다.
또한 사회적으로 폐쇄적 통혼, 즉 근친혼을 통해 자신들의 세력을 유지하고자 하였다.
그러나 광종이 쌍기의 제안으로 시행했던 과거제와 경종의 전시과를 통해 호족이 아닌 관료들도 기회는 주어졌다.



그러나 이런 문벌귀족들의 지배로 사회에는 모순이 쌓이게 된다.
여러 사건들이 일어나는 폭풍전야의 시대
1. 이자겸의 난
이자겸의 난은 1126년(인종 때) 외척으로 권력을 장악한 문벌귀족 이자겸이 왕권 강화 정책에 반발하여 일으킨 반란이다. 인종의 장인인 그는 자신의 딸들을 잇달아 왕비로 들여 외척으로서 권세를 강화했지만, 왕이 견제하려 하자 스스로 군사를 일으켰다. 그러나 부하였던 척준경이 왕의 편으로 돌아서면서 반란은 진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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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묘청의 서경 천도 운동
인종 때 일어난 사건으로, 김부식에 의해 결국 실패로 돌아가게 된다.
| 서경파 | 개경파 |
| 묘청, 정지상 | 김부식 |
| 불교, 풍수지리설 | 유학 |
| 고구려 계승(자주적) | 신라 계승(사대적) |
| 칭제건원 사용, 금 정벌 | 금 사대 |
후에 신채호는 <조선사연구초>에서 이 운동을 '조선역사 일천년래 제일 대사건'이라고 하며 서경파의 운동이 실패로 돌아간 것을 아쉬워하였다.
3. 문신 vs 무신
문신 김돈중이 무신 정중부의 수염에 불을 붙였던 사건.
문신 한뢰가 무신 이소응의 뺨을 때렸던 사건.


무신 정변이 일어나다 - 고려의 후기
1170년 의종 때 무신 정변이 일어난다.
이후 지배 세력은 이의방 → 정중부 → 경대승 → 이의민 → 최충헌 → 최우 순으로 변화하였는데, 최충헌은 봉사 10조라는 개혁안을 왕에게 올리기도 하였으며, 최우는 강화도로 천도하였다.
당시 정치적인 부분도 변화하는데, 이의방부터 이의민까지는 무신의 최고 기관이었던 중방이 이어지지만, 최충헌에 이르러 교정도감(별감)으로 바뀌었으며, 최우는 인사권을 가진 정방과 문신을 등용한 서방을 추가로 도입하기도 하였다.
군사적인 부분은, 경대승이 도방을 창설하지만 이의민이 사용하지 않다가, 최충헌 때 다시 도방을 사용한다. 최우는 야별초를 삼별초로 통합시키기도 하였다.




사회의 동요
무신 정변 이후 불안정한 사회로 인해 전국에서 여러 저항 운동들이 일어난다.
이의방 - 정중부 시기에는 지배층이었던 김보당(개경에서)과 조위총(서경에서)이 저항하였고, 공주 명학소에서 망이·망소이의 난이 일어났다.
경대승 - 이의민 시기에는 운문·초전에서 김사미·효심의 난이 일어났으며, 망이·망소이의 난처럼 양민이 일으킨 난이었다.
최충헌 시기에는 천민들이 신분 해방을 외친 만적의 난이 개경에서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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