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경제는 크게 조세, 토지, 무역, 경제활동 네 가지 분야로 나뉜다.
1. 조세
민정 문서
경제 활동은 크게 세 가지 형태로 제공되었는데, 조세(토지세), 공납(특산물), 역(노동력)이다.
그 중 조세 수취를 위해 필요한 문서이다. 고려와 조선에 들어서는 사람은 호적으로, 토지는 양안으로 정리하였다.
일본에서 발견되었으며, 청주의 서원경 지방의 문서이다. 서원경에서는 <직지심체요절>이 함께 보관되어 있었다.
민정 문서는 촌주가 3년마다 정리하였다.

2. 토지
토지의 수조권
토지의 수조권은 관리에게 부여되었는데, 관료전은 노동력을 필요로 하지 않지만 녹읍은 노동력을 제공하였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관료전 - 토지의 곡식만 제공
녹읍 - 백성의 노동력을 포함하여 토지의 세금을 직접 걷음
토지의 소유권
토지의 소유권은 백성에게 부여되었으며, 성덕왕은 정전을 지급하였다. 이는 고려와 조선으로 넘어와서 민전의 형태로 변화한다.
*녹읍 지급 → 관료전(신문왕) → 녹읍 폐지(신문왕) → 정전(성덕왕) → 녹읍 부활(경덕왕)
역사만화 - 통일 신라의 발전 - 경제생활 - 녹읍의 폐지와 관료전의 지급 - 역사만화 - 체험학습 열린교실-푸른날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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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무역
발해는 솔빈부의 말이 유명하였으며, 거란과 당(조공도), 일본(일본도), 신라(신라도)와 교역하였다. 당은 발해와의 무역을 위해 발해관을 짓기도 하였다.
신라의 청해진과 법화원에서는 장보고가 활발하게 교역하였으며, 진흥왕 때 얻은 당항성에서도 무역이 이루어졌으며, 울산항에서는 아라비아의 유리와 아라비아인의 모습을 지닌 원성왕릉 무인상이 발견되었다. 당에는 신라인들이 지내던 신라방, 신라소, 신라원이 지어졌다.



4. 경제활동
지증왕이 동시(전)을 만들었으며 통일 신라 때는 규모가 커지니 서시와 남시 또한 만들게 되었다.
<사회>
사회의 모습은 크게 세 가지로 알아볼 수 있는데, 화랑도와 화백회의, 골품이다.
1. 화랑도
화랑(귀족) + 낭도(귀족과 일반)이 합해진 것으로 계급 갈등이 완화되었음을 알 수 있다.
진흥왕 때 국가 조직으로 개편되었으며, 조선의 독립운동가 신채호는 화랑도의 정신을 본따 낭가사상을 주장하였다.


2. 화백회의
신라: 화백회의 - 김씨, 만장일치 원칙
고구려: 제가회의 - 고씨
백제: 정사암 - 부여씨와 8성
발해: 정당성 - 대씨
*화랑도와 화백회의를 보면 알 수 있듯이 씨족 사회 전통이 이어져오고 있다.

3. 골품
골품제는 폐쇄적이고 삶의 모습을 규정하는 제도였다.
골은 성골과 진골로 나뉘며, 성골은 진덕여왕 이후 대가 끊겼으며 태종 무열왕인 김춘추부터 진골이 이어졌다.
품은 6두품을 말하며, 6두품은 "아찬"이라는 벼슬까지만 진급할 수 있었다. 이에 불만을 품은 설계두는 외국으로 넘어가기도 하였다. 같은 설씨인 설총은 원효대사의 아들로, 신문왕 때 화왕계를 작성하기도 하였다. 후에 빈공과에서 토황소격문으로 유명세를 얻은 최치원은 귀국하여 시무 10여조를 제시하였지만 시행되지 못했다. 최치원은 <계문필경>이라는 저서를 작성하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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