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시 사회 흐름
강화도 조약(76) - 임오군란(82) - 갑신정변(84) - 동학 농민 운동(94) - 갑오·을미개혁 - 아관 파천 - 대한 제국 - 러·일 전쟁(04)
러·일 전쟁(04)
러시아 용암포 사건(03) - 러시아가 압록강 하구 용암포를 군사 거점으로 사용하는 것을 명분으로 조선 북부 진출을 꾀하자 일본이 러시아가 조선을 집어삼키려 한다고 판단하여 러·일 전쟁을 일으켰다.
러·일 전쟁 중 일본이 조선의 군용지를 자유롭게 사용한다는 한·일 의정서를 체결하였다.
러·일 전쟁에서 일본이 승리하며 종결 조약인 포츠머스 조약(05)을 맺는다. 러시아는 조선에서의 일본 우월권을 인정하였다.



1차 한·일 협약
러·일 전쟁 중 체결되었으며, 일본인 고문을 조선 정부에 파견하였다. 메가타는 재정을, 스티븐스는 외교를 관리하였다.


2차 한·일 협약
포츠머스 조약 직후, 조선의 외교권을 박탈하고 일본 통감부를 설치하여 통감이 관리하도록 하였다. 을사늑약(05)이라고도 한다.

헤이그 특사
고종이 2차 한·일 협약이 강제로 체결된 불법 조약임을 세계에 알리기 위하여 이준, 이상설, 이위종을 네덜란드의 헤이그 만국평화회의에 파견하였다. 그러나 일본의 방해로 회의 참석에 실패하였다.

고종 폐위
일본이 헤이그 특사 파견을 구실로 고종을 강제 퇴위시키고, 순종(연호: 융희)을 즉위시켰다. 실질적으로 대한 제국 황제는 허수아비가 되었다.


한·일 신협약(정미 7조약, 07)
대한 제국의 군대 해산과, 일본인 차관이 다스리기 시작하였다.
기유각서
대한 제국의 사법권을 일본에게 박탈당하였다. 재판과 감옥까지 모두 일본이 관리하였다.
경술국치(1910.8.29)
한일 병합 조약을 체결하며 대한 제국은 국권을 완전 상실하게 된다.

애국 계몽 운동
사회 진화론이 대두된다. 강한 민족이 되어 실력을 쌓아야 한다는 실력양성론을 주장하며 교육, 언론, 식산흥업의 발전을 도모하였다.
보안회
농광 회사와 함께 일본의 황무지 개간권을 반대하였다.

헌정 연구회
- 입헌 군주제 지향
- 일진회 비판
- 을사늑약 반대
대한 자강회(06)
- 입헌 군주제 지향
- 전국 지회 개최
- 월보 발간
- 고종 퇴위 반대 운동을 전개하였으나 보안법에 위배한다는 명목으로 일본에 의해 강제 해산되었다.

신민회(07)
- 안창호, 양기탁이 만든 비밀 결사 조직으로, 105인 사건으로 해체되었다(11).
- 대성 학교(안창호), 오산 학교와 자기 회사, 태극 서관을 설립 및 운영하였다.
- 공화정 지향
- 서간도 삼원보에 국외 독립운동 기지를 세웠다.
- 신흥 강습소(신흥 무관 학교로 확대)를 운영하여 독립군 간부를 양성하였다.


애국 계몽 운동은 이후 실력 양성론으로 이어지게 된다.
개인적 운동
민영환의 자결
지식인 민영환이 을사늑약 체결에 항거하여 자결하였다.

장지연이 황성신문에 실은 '시일야방성대곡'
을사늑약을 '나라를 팔아먹은 날'이라 규탄하고 을사오적과 일본을 신랄하게 비판하여 언론을 통해 민족의식을 고취하였다.

나철, 오기호 중심의 오적 암살단
을사오적을 처단하려 한 비밀 결사이다. 이재명(이완용 암살 시도)을 중심으로 활동했으며, 실제 암살에는 실패하였으나 말과 글을 넘어 행동으로 저항하려는 흐름을 시작하였다.


전명운, 장인환이 스티븐스 사살(08)
미국인이자 친일 외교 고문인 스티븐스를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사살하였다.

안중근이 이토 히로부미 사살(09)
하얼빈 역에서 통감부 초대 통감이자 침략의 핵심 인물이었던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하였다. 안중근은 한중일 협력과 침략 중단 및 공동 번영을 주장하는 <동양 평화론> 집필을 시도하기도 하였다.

의병 운동
성리학을 따르는 위정척사들은 의병 운동을 전개하였다. 최익현은 강화도 조약에 반대하는 도끼 상소를 올렸으며, 임오군란 이후 외세의 간섭이 심해지자 유생들이 위정척사를 주장하며 영남 만인소를 올리기도 하였다.

을미의병
- 배경: 을미사변과 을미개혁의 단발령 시행
- 유인석, 이소응 등 양반 유생이 반발하여 일어났다.
- 아관 파천 이후 고종이 해산 권고를 하였다.

을사의병
- 배경: 을사늑약
- 최익현(태인), 민종식(홍주) 주도
- 평민 의병장인 신돌석 활동

정미의병
- 군대 해산에 반발하여 박승환이 자결하였으며, 해산된 군대 인원들이 합병하여 규모가 커짐에 따라 의병 전쟁으로 발전하였다.
- 13도 창의군은 이인영과 허위를 필두로 서울 진공 작전을 구상하였다.
- 국제법상 교전 단체로 인정받을 것을 요구하였다.

오늘151_13도 창의군 서울 진공 작전 전개 | 큰★별쌤의 오늘
호남 의병
일본의 '남한 대토벌' 작전으로 큰 피해를 입었다.
의병 운동은 이후 항일 무장 투쟁으로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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