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종의 아버지인 흥선 대원군이 펼친 정책은 대내 정책과 대외 정책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대내 정책
19세기는 세도 정치와 삼정 문란으로 사회와 경제가 혼란스러운 시기였다. 삼정의 문란을 해결하기 위해 박규수가 삼정이정청을 설치하였으나 실패한다. 따라서 흥선 대원군은 세도 정치를 탄압하고 왕권을 강화하려고 하였으며, 삼정 문란을 해결하고 민생 안정을 위해 힘썼다.


왕권 강화
- 비변사를 폐지하였다. 행정 조직인 의정부와 군사 조직인 삼군부를 설치하였다.
- <대전회통>과 <육전조례>를 편찬하였다.
- 경복궁을 중건하기 위하여 원납전을 징수하고 당백전을 발행하였다. 또한 묘지림을 벌목하였다.
- 서원을 47개소로 축소하였다. 또한 만동묘를 금지하였다.



민생 안정
- 전정: 양전 사업을 통해 재정을 충당하였다.
- 군정: 호포제를 실시하여 양반도 군역을 실시하도록 하였다.
- 환곡: 기존에는 공무원이 관리하였으나 사창제를 통해 민간이 관리하도록 하였다.


흥선 대원군의 원납전 징수, 묘지림, 만동묘 폐지, 호포제 실시 등으로 최익현이 탄핵 상소를 올렸다. 이 상소가 받아들여져 고종 친정이 시작된다. 최익현은 후에 개항을 반대하며 을사의병에서 활약한 인물이다.

대외 정책
19세기에 서세동점이 시작되며 이양선이 많아졌다. 따라서 통상 수교를 두고 의견이 나뉘었지만, 흥선 대원군은 통상 수교를 거부하였다.
병인박해(66), 병인양요(66)
프랑스 천주교 선교사를 처단하는 병인박해를 구실로 강화도에서 프랑스군이 쳐들어오는 병인양요가 일어난다. 양헌수는 정족산성에서, 한성근은 김포의 문수산성에서 활약하였다. 병인양요 때 외규장각 도서가 약탈되었으나 후에 박병선 박사가 직지심체요절과 의궤, 외규장각 도서를 되찾아왔다.


옛날 병인년 즈음하여... | 러시아, 프랑스, 조선, 흥선대원군, 병인박해, 병인양요 | 핵심 in 한국사
오페르트의 남연군 묘 도굴 시도(68)
독일 상인 오페르트가 충청도 덕산에 있는 흥선 대원군의 아버지인 남연군의 묘를 도굴하려는 일이 일어났다.

제너럴 셔먼호 사건(66), 신미양요(71)
평양에서 미국군이 벌인 제너렬 셔먼호 사건이 일어났으며, 박규수가 진압하였다. 이를 구실로 강화도에서 미군이 쳐들어오는 신미양요가 일어났으며, 어재연이 광성보에서 전투를 벌였으나 수자기를 약탈당하는 등 큰 피해를 입었다. 이후 흥선 대원군은 척화비를 건립하였다.



제너럴 셔먼호 사건 & 신미양요 한번에 다보기 l 근대 한국사 3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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