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 페이지 위에서

디지털 일기장

게임/스카이림

<A Brief History of the Empire, Part Four 간략한 제국의 역사, 제 4권>

동그란포식자 2025. 9. 11. 09:55

저자 - 제국 역사담당관 스트로나흐 크'토이지 3세

내용

제 1권에서는 타이버 셉팀으로부터 시작되는 셉팀 왕조 8명의 황제에 대해 간단히 기술하였다. 2권은 레드 다이아몬드 전쟁과 그 뒤를 잇는 6명의 황제에 대해 기술하였고, 3권은 그 다음 3명의 황제인, 절망에 가득 차있던 유리엘 4세와 능력이 부족했던 세포루스 2세, 그리고 영웅과도 같았던 유리엘 5세에 대해 기술하였다.

먼 바다 너머 아카비르에서 유리엘 5세가 죽었을 때 당시 유리엘 6세의 나이는 겨우 5살이었다. 사실 그는 그의 아버지가 아카비르로 떠나기 얼마 전 태어난 아이로, 유리엘 5세의 다른 자녀라고는 황제가 떠난지 한 달 후에 그의 하녀에게서 태어난 모리하타와 엘로이사라는 쌍둥이가 전부였다. 유리엘 6세는 3시대 290년에 즉위했으나, 그의 어머니 소니카는 유리엘 6세가 성신이 될 때까지, 그의 나이가 어리다는 명목 하에 제한적으로 섭정을 하도록 하게 되었다. 하지만 실질적인 권력은 카타리아 1세 이후로 언제나처럼 원로 위원회가 쥐고 있었다.

원로 위원회가 법을 제정하고 그 이익을 취하는 데에 있어서 걸림돌이 되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기 때문에, 유리엘 6세는 3시대 307년, 22살이 될 때까지 왕권을 쥐지 못했다. 그는 몇 년 동안 천천히 실권을 차지해갔지만, 원로 위원회와 제한적이나마 섭정을 하던 그의 어머니는 그에게 통치권을 넘겨주고 싶어하지 않았다. 유리엘 6세가 왕위에 올랐을 당시, 그에게 주어진 권리는 오직 거부권 뿐이었다.

하지만 유리엘 6세는 이 거부권을 자주, 또 강력하게 행사하며, 3시대 313년에는 탐리엘을 다스리는 것은 자신이라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게 되었다. 그는 지금은 없는 스파이 조직과 특수부대를 사용하여 원로 위원회의 까다로운 구성원들을 따돌리고 억누를 수 있었다. 유리엘 6세의 이복동생인 모리하타 역시 그의 뛰어난 수완을 가져온 가장 충실한 조력자였다. 그녀의 영향력은 그녀가 훗날 윈터홀드의 올페 거슨 남작과 결혼하여 상당한 부와 영향력을 가지게 되면서 더 강해졌다. 유리엘 6세를 두고 현자 우가릿지는 말한다. "유리엘 5세는 에스로니엣을 정복했으나, 유리엘 6세는 원로 위원회를 정복했다."

그러던 유리엘 6세가 말에서 떨어져 제국 최고의 치료사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사망하자, 모리하타가 그 왕위를 이었다. 소위 '자기 잇속만 차리는' 외교관들은 25살인 그녀를 탐리엘에서 가장 아름다운 존재라고 묘사하고는 했으나, 그녀는 확실히 두뇌가 명석하고 활발하며, 숙련된 외교관이었다. 그녀는 스카이림의 대마법사를 임페리얼 시티로 불러들여 타이버 셉팀 시대 이래 두 번째 제국 전투마법사로 임명했다.

모리하타유리엘 6세가 시작했었던 일들을 마무리하여 황제의 영향력이 미치는 제국의 범위 내에서 진정한 정부 형태를 만드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이미 제국의 영향력이 미치지 않는 지역에서 제국의 지위는 서서히 붕괴되고 있었다. 그녀의 할아버지인 세포루스 2세 때부터 이어진 혁명과 내전이 계속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태를 매듭짓기 위해, 모리하타는 무리하지 않으며 신중하게 반격하며, 저항하는 영지들을 천천히 평정해나갔다.

모리하타의 군사작전은 대단히 성공적인 것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원로 위원회는 그녀의 신중한 움직임에 불만을 품고 있었다. 이런 와중에, 토리클 로무스라는 콜로비안식 이름을 가진 아르고니안 의원이 그녀가 블랙 마쉬의 파병 요청을 거부했던 것을 반대한 일에 대해 앙심을 품어, 3시대 339년에 자객을 보내 그녀를 살해했다고 알려져 있다. 로무스는 끝까지 자신의 무죄를 주장했으나 즉결심판에 회부되어 처형당했다.

모리하타의 자녀들은 모두 죽어 남아있지 않았고, 그녀의 쌍둥이 엘로이사 또한 4년 전 고열로 사망했기 때문에 25세가 된 엘로이사의 아들 펠라지우스펠라지우스 4세의 이름으로 왕위에 올랐다. 그는 모리하타의 뒤를 이어 서서히 대처하기 까다로웠던 왕국, 공작령, 남작령들을 평정해나갔다. 하지만, 그는 모리하타의 신중함을 답습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녀만큼 성공하지는 못했다. 오랫동안 제약 없이 지내왔던 왕국, 공작령과 남작령들은 펠라지우스 4세가 가하는 최소한의 제약조차 견디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답습했던 모리하타의 정책이 뛰어났던 덕분인지, 펠라지우스 4세가 죽을 때까지 제국은 안정되고 부유한 나날을 보냈다. 탐리엘은 유리엘 1세 이래 그 어느 때보다도 안정된 통합체에 가까웠다.

현재의 황제 유리엘 셉팀 7세펠라지우스 4세의 아들이며, 그는 그의 이모할머니 모리하타의 부지런함과 큰할아버지 유리엘 6세의 정치적 수완, 증조부 유리엘 5세의 군사적 통솔력을 이어받았다. 그의 21년간의 통치기간 동안 탐리엘에는 정의와 안정이 찾아왔다. 그러나 3시대 389년 그는 제국 전투마법사인 제이거 탄에게 배신당했다.

유리엘 7세 제이거 탄이 만들어둔 차원에 갇혀버렸고, 탄은 그의 환영마법을 이용하여 황제의 모습으로 변장하였다. 그후 10년 동안 탄은 제국의 특권을 남용하기만 했을 뿐 유리엘 7세의 재통합 계획에는 관심조차 두지 않았다. 그가 10년 동안 그의 왕으로 가장하는 동안, 그의 진정한 목적과 개인적인 성과가 무엇이었는지는 밝혀진 바가 없다. 3시대 399년, 신원을 알 수 없는 어떤 챔피언이 제국 궁전의 지하감옥에서 전투마법사를 무찌르고 차원의 감옥에 갇힌 유리엘 7세를 구출해냈다.

감옥에서 해방된 유리엘 셉팀 7세는 탐리엘을 재통합시킬 전쟁을 부지런히 재개하였지만, 제이거 탄의 방해 때문에 전쟁의 추진력이 사라져버린 것은 부정할 수 없던 사실이었다. 하지만 그후 몇 년동안 타이버 셉팀의 지배 하에 탐리엘이 번성했던 황금기가 다시 한 번 열리리나는 희망이 보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