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자 - 제국 역사담당관 스트로나흐 크'토이지 3세
내용
1권에서는 영광스러운 타이버 셉팀에서부터 그의 6대 종손녀인 킨티라 2세까지 셉팀 왕조의 8대 황제까지의 삶을 요약하여 기술하였다. 일부 학자들은 킨티라 2세가 포로가 되어 글렌포인트에서 살해당함으로써 셉팀 가문의 순수 혈통이 끊어졌다고 생각한다. 이 사건은 중요한 전환점이라는 것은 분명하다.
유리엘 3세는 자신을 탐리엘 제국의 황제로 선언했을 뿐 아니라, 저명한 성을 따와서 황제의 칭호를 유리엘 셉팀 3세라고 명명하였다. 사실 그의 성은 아버지의 혈통에 따라 만티아코라이어야 했다. 결국 그는 퇴위당하고 그의 범죄 행위도 비방받았지만, 황제의 칭호로써 셉팀이라는 이름을 취한 관례는 그와 함께 남아있었다.
레드 다이아몬드 전쟁이 지속되던 6년 동안 - 레드 다이아몬드는 셉팀 가문의 유명한 휘장에서 따온 이름이다 - 제국은 제각각 분열되었다. 주요 전쟁 참가자들은 펠라지우스 2세의 남아있는 세 자녀인 포테마, 세포루스, 매그너스와 그들의 자손들이었다. 물론 포테마는 그의 아들인 유리엘 3세를 지지하였으며 스카이림 전 지역과 북부 모로윈드의 지원을 받았다. 그러나 세포루스와 매그너스의 노력으로 하이락은 변심하여 등을 돌렸다. 나머지 해머펠, 서머셋 아일즈, 발렌우드, 엘스웨어, 블랙마쉬는 그들의 충성도에 따라 양분되었지만, 대부분의 왕들은 세포루스와 매그너스를 지지하였다.
제 3시대 127년, 유리엘 3세는 해머펠의 이치다그 전투에서 포로가 되었다. 재판을 하기 위해 임페리얼 시티로 호송하는 도중, 폭도들이 죄수를 호송한 마차를 덮쳐 그를 안에 가둔 채로 불태워버렸다. 그를 잡은 사람이자 삼촌이었던 세포루스는 임페리얼 시티로 계속 향하여 군중들의 환호 속에서 세포루스 1세로 왕위에 올랐다.
세포루스 1세의 제위기간을 특징짓는 것은 전쟁뿐이었다. 어디를 보더라도 그는 친절하고 지적인 사람이었지만, 당시 제국에 필요했던 자는 위대한 전사였다. 그리고 다행스럽게도 그는 바로 그런 인물이었다. 그는 10년간 끊임없는 전쟁 끝에 누이인 포테마를 패퇴시켰다. 일명 솔리튜드의 늑대여왕이라고 불리는 그녀는 제 3시대 137년에 그녀가 통치하던 도시에서 농성전을 벌이다 죽었다. 세포루스는 누이보다 단지 3년 더 살았다. 그는 전쟁 때문에 결혼을 하지 못했다. 그래서 그의 동생이자 펠라지우스 2세의 4번째 자식인 이가 왕위에 올랐다.
매그너스 황제는 왕위에 올랐을 때 이미 나이가 지긋했는데, 레드 다이아몬드 전쟁에서 반역을 꾀한 왕들을 처벌하는 일에 남은 정력의 대부분을 소진해야 했다. 일설에 따르면 매그너스의 아들이자 왕위 후계자인 펠라지우스 3세가 부친을 살해했다고 하는데, 그리 신빙성이 높은 이야기는 아니다. 펠라지우스가 죽은 포테마 여왕을 대신하여 솔리튜드의 왕위를 이어받은 후, 임페리얼 시티를 방문한 적은 거의 없기 때문이다.
펠라지우스 3세는 3시대 145년에 왕위에 올랐는데, '광기의 펠라지우스'라고 불리곤 했다. 그의 기괴한 행동은 거의 처음부터 궁정에서 목격되었다. 그의 행동 때문에 정부고관들은 당황스러워했고, 봉신 야를들은 불쾌해했다. 그리고 목을 매달려고 하는 바람에 제국 무도회장을 폐쇄했던 적도 있다. 결국 오랫동안 고통을 겪던 그의 아내가 제국의 섭정을 맡게 되었고, 펠라지우스 3세는 여러 치료 시설과 정신병원으로 보내져 3시대 153년 34살의 나이로 죽었다.
섭정을 맡은 아내는 남편이 죽은 후, 카타리아 1세라는 칭호로 왕위에 올랐다. 킨티라 2세의 죽음으로 셉팀 가문의 혈통이 끝났다는 주장을 인정하지 않는 사람들조차 이 다크엘프 여성의 등극으로 인해 정말로 셉팀 혈통이 쇠퇴하였다고 여기게 되었다. 반면 그녀를 옹호하는 측에서는 카타리아가 비록 타이버의 후손이 아니지만, 그녀와 펠라지우스 사이에서 낳은 아들이 황족의 혈통을 이어가고 있다고 주장한다. 인종차별주의자들의 부정적인 공세에도 불구하고 카타리아의 46년간의 제위기간은 탐리엘 제국사에서 가장 축복받은 시기 중 하나로 인정받는다. 임페리얼 시티에서의 생활이 마음에 편치 않았던 카타리아는 제국 곳곳을 널리 여행하며 돌아다녔는데, 이는 타이버 즉위 이후로 어떤 황제도 행하지 않은 일이었다. 그녀는 이전 황제가 파기한 동맹과 망가뜨린 외교 관계로 인해 발생한 상처의 많은 부분을 복구했다. 국민들은 귀족들보다도 더욱 그녀를 사랑하게 되었다. 블랙 마쉬에서 발생한 소규모 전투에서 그녀가 전사한 사건은 음모론에 빠진 역사가들이 가장 다루기 좋아하는 주제다. 예를 들어 특권을 박탈당한 셉팀 가문의 일족이 그 전투에 연루되어 있다는 현자 몬타리우스의 폭로처럼 말이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카신더가 왕위에 올랐을 때 그는 이미 중년의 나이였다. 엘프 혼혈이었던 그는 마치 브레튼 족처럼 나이를 먹었다. 사실 그는 건강이 약했기 때문에 배다른 동생인 유리엘에게 웨이레스트의 통치권을 이미 넘겨준 상태였다. 그러나 펠라지우스, 더 나아가 타이버의 순수 혈통과 이어져있다는 이유만으로 그는 왕권을 수락하라는 압력을 받았다. 놀랄 것도 없이, 황제 카신더는 그리 오랫동안 왕위에 있지 못했다. 2년 후 그는 영원히 잠들어 있는 선대 황제를 곁으로 떠났다.
유리엘 라리아트는 카타리아 1세와 펠라지우스 3세 사후 재혼하였던 남편인 갈리베르 라리아트와의 사이에서 태어난 카신더의 배다른 동생으로, 웨이레스트 왕국을 떠나 유리엘 4세로서 제위에 올랐다. 법적으로 그는 셉팀 가문의 사람이다. 왜냐하면 카신더가 웨이레스트 왕이었을 때 그를 황실에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원로 위원회와 국민들에게 그는 카타리아의 사생아일 뿐이었다. 게다가 유리엘에게는 어머니의 열정이 없었기에, 그의 기나긴 43년간의 제위기간은 선동이 난무하였다.
유리엘 4세의 이야기는 3권에서 서술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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